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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전에 늘 고민하는 것이 있다. 이번 주에 선생님께서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나요?'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까. 오늘도 그에 대해 생각하며 병원으로 갔다. 늘 9시 반 전에 도착하다가, 오늘 조금 늑장을 부리고 10시 반이 다 되어서야 접수를 했더니 대기실에 사람이 많았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내 순서가 되었다.
선생님 : 잘 지내셨어요?
나 : (끄덕끄덕)
선생님 : 잠도 잘 주무셨구요?
나 : (끄덕끄덕)
어쩐지 오늘은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왠지 모르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말이 없으니 선생님께서 말씀을 많이 하신다.
선생님 :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당분간은 뇌를 좀 쉬는 시간을 가지는 걸로 해요. 2월 중순까지는. 또 그 이후에는 쉬지 못하고 뭔가를 많이 해야하는 시기가 올 수 있으니까요. 쉴 수 있을 때 좀 쉬자구요. 이번 주에는 뭘 하면서 보내셨어요?
나 : 음... 책도 좀 보구요.
선생님 : 좋죠.
나 : 크리스마스라고 티비에서 옛날 영화들을 많이 방영해주더라고요. 진짜 옛날 영화, 1900년대에 나왔던 로보캅 같은 것들요.
선생님 : 오 그런 것도 티비에서 해주나요? 거의 20~30년 된 영화죠?
나 : 네, 화질도 안 좋구 ㅎㅎ 그 당시에 못 봤던 영화라 이번에 봤어요.
선생님 : 좋네요. 평소에 안 하던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요.
나 : 고양이가 있으니까 규칙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밥그릇, 물그릇 씻어서 밥주고, 청소도 하고, 놀아도 줘야 하고... 그렇게 하루 두세시간은 보내고 있어요.
선생님 : 그렇죠. 예전에 키운 경험이 있으니까 어렵진 않겠네요.
나 : 네, 그리고 착하고 요구사항이 많지 않은 친구라... 원하는 것도 안으로 지키는 편이고.. 얌전해서 제가 편해요.
선생님 : 정이 많이 들겠어요.
순간 선생님께서 뭔가 아이코,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헤어질 때를 생각한 듯한 느낌.
선생님 : 그런데 뭐,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구요. 전에 말했던대로.... 일단 오늘 하루를 우울하고 무력하지 않게, 조금 활기차고 규칙적으로 보내는 것에 목표를 두고요. 연말이라 조금 마음이 뒤숭숭하거나 쓸쓸할 수도 있는데 괜찮았나요?
나 : 네. 특별하게 의미를 두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괜찮게 잘 지냈어요.
그런데 말과는 다르게 서서히 눈에 눈물이 고였다. 참아보려고 끔뻑끔뻑 했는데 결국 참지 못했다.
나 : 잘 지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 그러게요. 어떤 의미의 눈물일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 : 여러 가지 감정적 의미가 있겠지요. 회환이 들 수도 있구요. 또 다른 일은 없었나요?
나 : 제가.... 재택 알바를 했는데요. 그게... (전) 남편이 일거리를 준거 였거든요.
선생님 : 아, 그럼 전에 같이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그런 건가요?
나 : 네. 전에 제가 하던 일 중에 대부분은 남편이 가져가서 하는데, 일부 못 하는 일이 있어서요. 저한테 수당을 주고 부탁하기로 했어요.
선생님 : 그럼 공백기간 동안에는 어떻게 처리한 거예요?
나 : 그냥 안 했더라구요! 해외에서 부품 수입해오는 일인데, 한 달 넘게 그냥 품절 띄우고 손님들한테도 기다리라고 하고 ... ㅎㅎㅎ 그렇게 안 하고 그냥 버텼더라구요. 지난 번 약속했던 날짜에 빌려줬던 돈을 다 돌려받았는데, 상환이 끝나고 나니까 일을 부탁해왔어요.
선생님 : 아하, 이제 당당한 입장이 된 그런 느낌이네요.
나 : 맞아요 ㅎㅎ 사실 제가 수당을 높게 불렀거든요. 담당자 새로 구하기도 힘들고, 기존에 연락망도 다 제 앞으로 되어 있는 상황이라 높게 불러도 저한테 시킬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근데 진짜로 쿨하게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선생님 : 그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게 될텐데 부담은 없으시구요?
나 : 네 뭐.... 부담은 없어요. 마음은 괜찮았는데 ....
여기까지 말하고 또 눈물이 터졌다.
나 : 그... (전) 남편 PC로 원격 접속해서 일처리를 했거든요. 근데 제가 카톡을 보내니까, 남편 PC 카톡에 '우리ㅇㅇ' 라는 이름으로 알림창이 뜨더라구요.
선생님 : 예전에도 그렇게 저장이 돼있었나요?
나 : 그건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전부터 저장된 걸 고치지 않은 걸수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죠. 근데 그냥... 그렇게 팝업이 뜨는 걸 보니까 마음이 울렁했어요.
선생님은 컴퓨터에 뭔가를 기록하셨다.
선생님 : 그렇죠.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럴 수 있죠. 어쩌면 남편분도, 남이 그렇게 많은 수당을 달라고 하면 안 시킬 수도 있는데, 옛정을 생각해서 쿨하게 수락을 한 걸수도 있고요. 또 본인이 좀 힘들지만 배워서 직접할 수도 있을텐데 굳이 그렇게 안 하고 ㅇㅇ씨에게 부탁을 하는 걸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지금은 뭔가 판단하거나 예측하지 않기로 해요. 그런 일이 있었고, 내 감정이 이랬다 정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아요. 그 이상은 생각하지 말구요. 부업알바가 생겼구나 그 정도만 생각하기로 해요.
상담은 보통 짧으면 10분, 길면 20분 정도 한다. 10분 상담한 날은 일주일치 약값을 포함한 병원비가 7천원대, 20분 상담한 날은 9천원 대가 나온다. 오늘은 9천3백원을 냈다.
진료가 끝나면 뭔가 상쾌한 기분이 든다. 상담 내용을 잘 기억하면 일주일을 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병원을 가는 매주 월요일은 은근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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