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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쓰는 일기

상담 6주차

homeless 2020. 12. 7. 16:30

지난 주는 비교적 활기차게 보냈다. 따뜻한 시간에 산책도 다녀오고 (비록 감기에 걸렸지만), 고장난 채 방치됐던 집의 집기들을 고치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화분을 분갈이하고, 집에 새로 맞이할 친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잠도 잘 잤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늘상 듣는 첫 질문, "한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처음으로 "재미있게 지냈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 : 날씨 좋을 때 산책도 하고 경치 구경도 하구요. 집에 고장난 것들도 수리기사님 불러서 고치고, 뭔가 기운이 나서 미뤄놨던 분갈이도 했어요. 뿌리가 화분 안에 가득 차서 잘 빠지지도 않더라구요. 재밌게 잘 보냈어요.

 

선생님 : 그러셨어요? 주변을 좀 정비하는 시간을 가지셨네요. 잘 하셨어요. 집에서 멍하니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해져요. 활동적으로 움직이면 좋죠. 일단 지금은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 하지 말고 당분간은 오늘을 잘 보내는 것을 목표로 집중해보세요. 

 

나 : 지난 주 상담이 좋은 쪽으로 충격이었어요. 이틀 정도 생각이 계속 나더라구요. 제가... 갖고 싶은데 갖기 어려운 것을 '나 그거 필요 없어, 싫어해.'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행복하게 잘 지냈을 때를 돌이켜보면 사람들과 팀을 이뤄서 일을 분담하고,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잘 해낼 때, 몸이 바쁘고 힘들더라도 만족감이 높았거든요. 회사에서 그런 좋은 환경을 만나기가 어려우니까, '난 조직생활 싫어. 안 해.'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런 회사가 얼마나 되겠어요?

 

선생님 : 그렇죠. ㅁㅁ씨가 가진 방어기제예요. ㅁㅁ씨는 관계에 있어서 이상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설정해두고, 그것을 벗어날까 두려워하는거죠. 저사람이 나한테 상처를 줄까? 나를 버릴까? 이런 것들이 걱정되고 상처받을 거 같으니까 관계 자체를 처음부터 차단하는 건데, 현실은 모두와 다 잘 지낼 수는 없는 거예요. 관계에도 알맞은 '거리'가 있거든요. 10명 중에 7명은 괜찮고, 3명은 좀 성격이 이상하거나, 나랑 잘 안 맞다 이런 상황이라면, 친한 사람과는 가깝게 지내고 잘 안 맞는 3명과는 거리를 좀 두면서 '저런 사람도 다 있네' 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3명 때문에 나머지 7명도 포기하는 거죠. 지난 주에 이야기한 고양이도 마찬가지구요. 이별이 두려워서 좋아하지만 키우지 않겠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고양이란 이상적이고 비현실적 존재거든요. 너무 나중까지 미리 생각하지 말고, 오늘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데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는거죠.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됐든 오늘이잖아요?

 

나 : 선생님, 그 고양이 말인데... 입양은 아직 성급하고, 기회가 되어서 지역 보호소에 있는 친구가 3개월 동안 저희 집에서 지내기로 했어요. 일단 3개월 지내면서 필요한 케어를 좀 하고, 그 이후에 원하면 제가 입양을 하거나, 보호소로 돌려보내거나..... 굉장히 안전한 방법인 거 같아서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선생님 : 아 그런 것이 있어요? 그거 참 좋네요. 서두를 필요 없어요. 나중에 어떻게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말고, 3개월 동안 친구가 생겼다 생각하고 즐겁게 잘 지내세요.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구요. 지금은 그게 필요해요.

 

 

약을 감량해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내 생계를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하루 하루 잘 지내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 말씀이 뭔가 초조함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약을 잘 챙겨먹도록 당부하는 것을 끝으로 진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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