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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오전에 병원에 간다. 10~15분 정도의 상담시간이 무척 기다려진다. 뭔가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고 그 공간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우울증 치료는 어언 5주 차가 되었다. 그동안의 상담이 내 일상을 살피고, 컨디션을 조절하고, 현재 고려중인 고민들을 들어보는 식이었다면, 이 날의 상담은 좀 더 적극적이었다.
선생님 : 지난 주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 : 존재했어요. 선생님
선생님이 하하 웃으신다.
나 : 이제는 청소도.. 더 할 게 없어요. 다 치워버렸어요.
선생님 : 그렇죠. 청소할 거리가 무한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집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나 : 음.... 티비나 휴대폰을 보면 시간은 잘 가는데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저녁에 기분이 안 좋아요. 그래서 요 며칠은 일부러 이것들을 좀 멀리하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선생님께서 적극적인 몸짓으로 자세를 고쳐 앉으셨다.
선생님 : 왜 기분이 안 좋을까요?
나 : 뭔가 생산적이지 않다고 해야 하나....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좋아해서, 고양이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남의 고양이 사진도 보고 그러거든요. 근데, 본업이 있을 때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한 시간 정도 그렇게 보는 건 취미생활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걸 아니까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아요.
선생님 : 그렇죠.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어려운 고민이죠.
나 :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적어보고 있어요.
선생님 : 그래요? 오 그거 쉽지 않을텐데요. 마음의 저항이 좀 있을 텐데 말이죠.
나 :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날도 있고, 아무 생각도 안 나는 날도 있고 그래요. 아이디어가 있는 날은 좀 기분이 좋기도 하구요. 뭘 하고 싶은지를 알기가 어려워서, 뭘 하기 싫은지를 밑에서부터 거꾸로 채워서 써보기도 해요.
선생님 : 그것도 좋은 방법이예요. 고양이를 좋아하시는데 키우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나 : 아... 제가 예전에 고양이를 키웠는데.. 그 아이가 죽었을 때 펫로스를 정말 심하게 겪었거든요. 저는 그걸 다시 겪어낼 자신이 없어요.
내 고양이는 나랑 6년을 살고, 7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 이야기를 하면 운다. 또 울었다.
선생님 : 좀 더 현재의 삶에 집중해봤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사람을 만나면 뭐해 결국 헤어질 텐데. 고양이를 키우면 얘는 분명 나보다 먼저 떠날 텐데. 이런 생각으로 관계를 회피하게 되면 삶의 질이 점점 나빠져요. 분명 고양이와 이별하는 것은 슬프지만, 어린 고양이를 데려오게 되면 지금부터 15년은 같이 살 수 있잖아요? 그 15년 동안 행복한 기억 많이 만들고 또 시간이 흘러서 그 아이를 보내줘야 할 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잘 헤어지는 것도 관계의 일부예요. 그런 관계들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거구요. 난 헤어지는 게 싫어서 관계 맺지 않을래, 하면 당장은 편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외롭고 고립되고.. 삶의 질이 낮아지거든요. ㅁㅁ씨에겐 이런 식으로 관계 맺고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 이 코로나 시국에 사람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찾기란 좀 어렵거든요. 그리고 반려동물은 어떤 면에서 사람보다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어요.
나 : 그렇죠. 그 아이들의 사랑은 조건이 없으니까요.
선생님 : 지금도 ㅁㅁ씨의 개인적인 상황이 인간관계가 축소가 되고 삶이 단촐해지는 형국인데, 빈자리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생각이 스며들게 되고, 혼자서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는 않거든요. 만약에 현실적으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어서 안 되겠다 그런 거라면 괜찮지만, 단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다면 다시 한번 고려해보시면 좋겠어요.
이 날의 상담은 좀 충격적이었다. 물론 좋은 방향의 충격. 난 평소 농담처럼 '손절이 특기'라 말하고 다닌다. 사람을 좋아는 하지만, 또 사람 사이에 생길 수 밖에 없는 속 시끄러움을 잘 견디지 못한다. 이러느니 안 만나지, 라며 가족도 손절 친구도 손절 모두 모두 손절하여 현재 남은 것은 지극히 좁은 인간관계뿐인 것이다. 섬처럼 홀로 남겨진 내 일상. 그동안 이런 성향은 그냥 나의 선택이고, 인싸의 삶이나 아싸의 삶이나 장단점이 있을 뿐 삶 전체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나의 삶은 무색 무미 무취가 되고 있었다. 머릿속에 상담의 여운이 남아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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